[로또 이야기] 제6화 — 달러와 세금의 세계: 파워볼과 메가밀리언스

"20억 달러."
한화로 환산하면 약 2조 8천억 원.
역대 한국 로또 1등 최고 당첨금이 407억 원이었으니, 그 약 70배에 달하는 숫자입니다.
지난 5화에서 예고한 대로, 오늘은 시선을 한국 밖으로 돌립니다.
1조 원이 넘는 당첨금을 자랑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복권, 미국 파워볼과 메가밀리언스. 한국 로또와는 무엇이 다르고, 역대 최고 당첨금은 얼마였는지, 그리고 당첨되면 실제로 얼마를 손에 쥘 수 있는지, 달러와 세금의 세계로 함께 들어가 보겠습니다.
# 파워볼이란 무엇인가: 숫자 두 묶음의 게임
파워볼(Powerball)은 미국 45개 주, 워싱턴 D.C.,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푸에르토리코에서 운영되는 복권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대형 복권 중 하나로, 1992년에 현재의 형태로 시작되었습니다.
규칙은 한국 로또와 비슷한 듯 보이지만, 구조가 다릅니다.
한국 로또는 1부터 45까지 숫자 풀 하나에서 6개를 뽑습니다.
파워볼은 숫자 풀이 두 개로 나뉩니다.
첫 번째 풀에서 1부터 69까지의 번호 중 5개를 고르고, 두 번째 풀에서 1부터 26까지의 '파워볼' 번호 1개를 따로 고릅니다.
티켓 한 장 가격은 2달러입니다.
추첨은 매주 월요일, 수요일, 토요일, 주 3회 진행됩니다.
이 구조가 만들어내는 1등 확률은 얼마일까요?
1/292,201,338.
한국 로또 1등 확률 1/8,145,060과 비교하면 약 36배 더 낮습니다.
한국에서 매주 1장씩 로또를 사면 통계적으로 16만 년이 걸린다고 했습니다.
파워볼은 그것의 36배, 약 560만 년에 해당합니다.
지구상에 인류가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사야 한 번 당첨될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확률이 낮을까요?
숫자 풀이 두 개로 나뉘기 때문입니다.
흰 공 5개를 모두 맞히더라도, 빨간 파워볼 번호까지 정확히 맞혀야만 1등이 됩니다.
이 구조 덕분에 1등 당첨자가 오랫동안 나오지 않을 수 있고, 그 사이 잭팟은 계속 쌓입니다.
잭팟이 쌓이고 쌓여 수억 달러, 수십억 달러로 커지는 것 — 그것이 파워볼이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이유입니다.
# 2022년 11월의 기적: 역대 최고 당첨금 20억 달러

2022년 11월 8일 밤, 파워볼 추첨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당첨 번호는 10, 33, 41, 47, 56, 그리고 파워볼 10.
그날 캘리포니아주 알타데나(Altadena)라는 작은 동네의 한 주유소에서 그 번호가 적힌 티켓이 팔렸습니다.
당첨금은 20억 4천만 달러(약 2조 8천억 원).
이것은 단순히 파워볼 역대 최고 기록이 아닙니다.
세계 복권 역사상 단 한 장의 티켓이 받은 당첨금으로는 역대 최고 기록입니다.
당첨자는 에드윈 카스트로(Edwin Castro)라는 남성이었습니다.
그는 당첨 사실을 안 뒤 석 달 넘게 조용히 있다가 조심스럽게 당첨금을 수령했고, 가능한 한 개인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가 선택한 수령 방식은 '일시불(Lump Sum)' — 20억 달러를 한꺼번에 받는 옵션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의 손에 들어온 금액은 얼마였을까요?
광고된 20억 4천만 달러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 일시불이냐, 연금이냐: 세금보다 먼저 오는 선택

미국 복권에는 한국에는 없는 독특한 선택지가 있습니다.
당첨금을 어떻게 받을 것인가 — 일시불이냐, 연금이냐.
광고에 나오는 당첨금 숫자는 '연금(Annuity)' 기준입니다.
연금 방식을 선택하면, 처음 한 번 받고 이후 29년에 걸쳐 총 30번 나눠 받습니다.
매년 지급액이 전년 대비 5% 씩 늘어나도록 설계되어 있어, 물가 상승을 어느 정도 반영합니다.
반면 일시불을 선택하면, 광고된 금액의 약 50~60% 수준을 한꺼번에 받습니다.
에드윈 카스트로의 경우, 20억 4천만 달러 광고 대비 일시불 금액은 9억 9,760만 달러였습니다.
약 49% 수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세금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미국은 복권 당첨금에 연방세와 주(州)세를 이중으로 부과합니다.
연방 원천징수율은 24%이지만, 거액의 일시불 수령은 최고세율 구간(37%)에 해당하여 실질 연방세 부담은 더 높아집니다.
여기에 주별로 다른 세율이 더해집니다.
다만 캘리포니아는 복권 당첨금에 주세를 부과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주 중 하나입니다.
결국 에드윈 카스트로가 실제로 손에 쥔 금액은 약 6억 2,850만 달러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광고된 20억 4천만 달러의 약 31% 수준이지만, 단순히 세금 때문만은 아닙니다.
애초에 그는 30년 연금 총액 대신 약 9억 9,760만 달러의 일시불 옵션을 선택했고, 이후 연방세가 적용되었습니다.
20억을 받았다는 헤드라인 뒤에, 실제로는 그 3분의 1이 손에 남는 구조입니다.
물론 6억 달러가 적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미국 복권 당첨 뉴스를 볼 때, 그 숫자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 메가밀리언스: 또 다른 거인

파워볼의 라이벌이라 불리는 메가밀리언스(Mega Millions)도 미국을 대표하는 복권입니다.
파워볼과 비슷한 이중 풀 방식으로, 1부터 70까지의 흰 공에서 5개, 1부터 24까지의 '메가볼'에서 1개를 뽑아 맞히는 게임입니다.
1등 확률은 1/290,472,336.
파워볼(1/292,201,338)과 거의 비슷한 수준입니다.
둘 다 한국 로또와 비교하면 수십 배 낮은 확률이지만, 그만큼 잭팟은 천문학적으로 쌓입니다.
메가밀리언스의 역대 최고 당첨금은 2023년 8월 8일에 나왔습니다.
플로리다주 넵튠비치(Neptune Beach)에서 팔린 한 장의 티켓이 16억 200만 달러(약 2조 2천억 원)를 가져갔습니다.
이 역시 세계 복권 역사에 남을 기록입니다.
2018년 10월에는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15억 3,700만 달러짜리 메가밀리언스 티켓이 나왔습니다.
2022년에는 일리노이에서 13억 4,000만 달러.
최근 몇 년 사이, 10억 달러를 넘는 잭팟이 드문 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이쯤 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의문이 있습니다.
왜 미국 복권의 당첨금은 이렇게까지 커질 수 있는 걸까요?
답은 인구와 구조에 있습니다.
미국은 3억 명이 넘는 인구를 가진 나라이고, 복권은 전국 단위로 판매됩니다.
1등이 나오지 않을 때마다 이전 잭팟이 다음 회차로 이월(롤오버)되어 누적됩니다.
잭팟이 커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티켓을 사고, 판매액이 늘수록 잭팟은 더 빠르게 불어납니다.
이 선순환(또는 악순환, 보는 관점에 따라)이 수십억 달러의 잭팟을 만들어내는 메커니즘입니다.
# 한국 로또와 미국 복권: 무엇이 다른가
숫자로 두 나라 복권을 나란히 놓으면, 차이가 선명해집니다.
1등 확률: 한국 로또는 1/8,145,060, 파워볼은 1/292,201,338.
파워볼이 약 36배 더 어렵습니다.
역대 최고 당첨금: 한국은 407억 원(2003년), 파워볼은 약 2조 8천억 원(2022년).
약 70배 차이입니다.
티켓 가격: 한국은 5조합에 1,000원, 파워볼은 조합당 약 2,800원(2달러).
당첨금 세금: 한국은 3억 원 초과 시 33% 단일 과세. 미국은 연방세(최대 37%)+주세 이중 과세.
가장 큰 구조적 차이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미국은 '일시불 vs 연금' 선택권이 있습니다.
한국은 일시불 수령만 가능합니다.
둘째, 미국은 이월 상한선이 없어 잭팟이 무한정 쌓일 수 있습니다.
한국은 이월 구조와 상한 규정이 비교적 제한적이어서, 미국처럼 수조 원 규모까지 커지는 경우는 드뭅니다.
셋째, 미국은 당첨금이 클수록 세금도 커져 실수령액이 광고의 절반 이하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한국 로또의 실수령율이 약 67%(33% 과세 기준)인 점과 대조됩니다.
더 어렵고, 더 크고, 그리고 실수령액은 생각보다 훨씬 작은 게임.
그것이 미국 대형 복권의 구조입니다.
# 그래도 사람들은 줄을 선다
파워볼 잭팟이 10억 달러를 넘어설 때마다, 미국 전역의 복권 판매점 앞에는 긴 줄이 생깁니다.
평소 복권을 사지 않던 사람들도 "한번쯤"이라며 지갑을 엽니다.
1/292,201,338이라는 확률을 알면서도, 혹은 모르면서도.
이 심리를 잘 설명하는 개념이 있습니다.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꿈의 소비(Dream Consumption)' — 당첨될 가능성이 아니라, 당첨되었을 때를 상상하는 행복을 구매한다는 것입니다.
2달러짜리 티켓 한 장으로, 며칠간 "만약 내가 당첨된다면"을 마음껏 상상할 수 있다면 — 그 행복한 상상의 값어치는 2달러를 훨씬 뛰어넘을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꿈'의 가치를 법으로 인정한 나라들이 있습니다.
사실 복권 당첨금에 세금을 매기지 않는 나라는 생각보다 많습니다.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독일, 아일랜드 — 이 나라들은 복권 당첨금에 소득세를 부과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미국처럼 연방세에 주세까지 이중으로 물리는 구조가 오히려 예외적으로 가혹한 셈입니다.
그중에서도 일본의 사례는 특히 눈길을 끕니다.

일본 역시 법률로 복권 당첨금에 소득세를 부과하지 않는데, 이유를 묻는 질문에 "서민의 꿈에 세금을 매길 수는 없다"는 말이 오래전부터 회자되어 왔습니다.
물론 구조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일본은 복권 판매액의 약 37~40%를 이미 지방자치단체 수익금으로 거두기 때문에, 당첨금에 다시 소득세를 매기면 이중과세가 된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비과세 국가들 중에서도 유독 일본의 이 표현이 오래 회자되는 이유는, 아마도 숫자와 제도 너머에 있는 그 한 줄의 철학 때문일 것입니다.
복권은 단순한 사행 게임이 아니라, 일종의 '제도화된 꿈'이라는 것.
에드윈 카스트로는 당첨 후 LA 지역 고급 주택 여러 채를 구입했고, 2025년 캘리포니아 산불로 자신의 말리부 저택이 전소되는 비극도 겪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그는 산불 피해를 입은 알타데나 지역의 토지를 매입하며 재건 움직임에 참여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자신이 당첨 티켓을 산 그 동네로 무언가를 돌려주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다음 제7화에서는 대서양을 건너겠습니다.
유럽에는 9개 나라가 함께 운영하는 복권이 있습니다.
유로밀리언스(EuroMillions) — 단일 국가가 아닌 다국적 풀로 잭팟을 만드는 이 게임은, 파워볼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거대해졌습니다.
그리고 스페인에는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전 국민이 함께 열광하는 엘 고르도(El Gordo)라는 복권이 있습니다.
1등 한 명이 전부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당첨금을 마을 전체가 나눠 갖는 독특한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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